목소리
목소리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10.19 00:00
  • 호수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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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 중부대교수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의 목소리요 선계의 목소리이다.

구름이 청산을 넘듯, 솔개가 하늘을 선회하듯 그녀의 창은 유장하고 청아하다.

도대체 이런 목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신은 인간에게 생명도 주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도 함께 주었으니 참으로 경이로울 뿐이다.

흔들고, 떨고, 뻗고 탁 놓는 시조창은 그지없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시조창을 하고 싶었다. 학문으로도 연구하고 싶었고 풍류를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그녀를 스승으로 삼았다.

십여년 동안 시조창도 종류별로 배웠고 가곡과 가사, 시창도 몇 곡씩 나누어 배웠다. 이제 나에게는 정가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정가를 내가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행운이었다. 

가곡은 멋과 풍류의 곡이다. 그 중 태평가는 기품이 있고 아정하다. 가곡은 남녀가 따로 부르는데 태평가만이 남녀 혼창으로 부른다. 태평가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는 다시 만난다.

만날 때도 애절하거니와 헤어질 때도 애절하다. 가까이에서 부르다 멀리에서 부르고 멀리에서 부르다 가까이에서 부르기도 한다. 인간사 모든 것들이 이 곡에 다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많은 사람이 부르면 눈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고 가슴 아픈 사람이 부르면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길게 빼는 목소리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팽팽하면서도 부드러운 난초잎 같고, 멈추는 듯한 목소리는 달빛 모래밭에 기러기가 사뿐 내려앉아 물깃을 치는 것 같다. 

십여년 세월 동안 나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고, 그런 가곡과 시조창을 불러 또한 행복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나 부르고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곡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아름다운 곡은 많은 공력을 들여야 부를 수 있고 많은 수련을 해야 들을 수 있다. 때로는 가을 낙엽으로 환한 봄바람으로, 겨울 함박눈으로 여름 녹음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목소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하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그 많은 목소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아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는가.

세찬 찬바람도 그 목소리에서 잦아들고 종일 눈발도 그 목소리에서 잦아드는 아늑한 가슴 한켠에 걸어둔 등불 같은 목소리. 그녀의 시조창은 그런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어떤 목소리도 자신의 가슴을 채워 주거나 적셔줄 수 없다.

언제나 가슴은 혼자 있어야 등불이 켜져 있는 법. 그 등불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는 깊고 아늑한 곳에 있지 아무의 눈에 띄는 그런 얕고 천한 곳에 있지 않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노력을 들여야 얻어지는 참으로 정겨운 목소리이다.

내가 그런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주 부르고 자주 듣고 해야 하는 더 많은 노력과 지체,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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