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산사람, 송이 할머니
진짜 산사람, 송이 할머니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11.02 00:00
  • 호수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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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열 / 칼럼위원

송이할머니는 진짜 산사람이다.

어제도 산에 갔고, 오늘도 갔다. 내일도 갈 것이다. 평생을 산에 기대어 살아 왔다. 산은 그의 삶의 터전이요 먹여 살리는 직장이다.

아침 해가 뜨면 배낭에다 건빵 한 봉지와 물 한 병을 챙겨 놓고 허리춤엔 손괭이를 차고 산으로 간다. 온종일 산을 뒤지다가 뭔가를 배낭에 담아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을 잔다.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딱 여기까지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오손도손 소통할 여유가 없다. 하루 만원의 욕망을 실현하려면 산에서 뭔가를 채취해야 한다.

가을 산은 그에게 없는 친정보다 낫다. 재수 좋은 날이면 송이버섯, 능이버섯도 배낭 가득 딸 수 있다.

산더덕, 산마는 그의 주된 수입원이다. 먼저 간 남편이 양지바른 산 기슭에 군데군데 심어 놓은 다래와 산머루는 요즘 와서 그에게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다.

옛날에는 뱀을 잡아 팔았으나 법으로 금지 된 이후 일체 뱀을 잡지 않는다. 불교를 믿은 후 살생을 하지 않으며, 산에서 밀렵꾼들이 설치한 올무를 만나면 풀어서 버린다.

할머니의 거처는 마을에서 뚝 떨어진 개울가의 외딴 집이다.

지은 지 백 년은 될 성 싶은 방 한 칸의 오두막집이다. 보일러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다. 가스레인지도 그에겐 사치다.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빨래도 개울가에서 방망이를 두들겨 한다. 김치 같은 것은 유리병에 담아 시원한 개울물에 담가 둔다.

시집 와서 50년간의 오두막살이. 그의 생활 형편은 50년 전 그대로다. 10년 전 남편이 먼저 가고,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세월이 그의 육신을 망가뜨린 것 밖에는 변화한 것이 없다. 50여 년간 인고의 산골 생활. 그는 불편한 삶에 대한 넋두리를 하거나 자신의 노화나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외로워 보인다.

두어 달에 한번 도우미들이 찾아와 얼굴을 내민다. “할머니, 찾아왔어요~" 할머니 하는 말이 “내가 감옥에라도 산다디? 면회 오게? 면회 올라치면 라면봉지라도 들고 와야지, 그냥 와?! 와서 이것저것 말 시피지마. 일만 품며." 뼈 있는 농담을 쏟아 놓는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오두막집에 놀러 간다.

“허어, 나 선생 왔구만? 산골로 이사하더니 얼굴이 좋아졌어~"하며 덕담부터 건넨다.
“우리 집에 뭐 줄게 있어야지. 어 참, 다래술 한잔 할꺼여? 아니면 허리 아픈데 좋은 잔대술 한잔 헐까?"

할머니는 술을 좋아한다. 술이 남편이요 친구다. 깡소주를 컵으로 마신다. 취하면 토방에 앉아 목놓아 울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 간다. 할머니의 근황이 궁금하다. 올 가을엔 송이와 다래를 얼마나 땄을까. 겨울나기 땔감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이번 주에 내려가면 찾아 뵈야겠다. 약초 냄새나는 토방에 앉아서 술 한잔 기울이고 싶다.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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