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웅
순 | ||
언제나 강 건너에 있으며 통통배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등불이다. 막 버스가 지나가고 밤 기차가 지나가는 설움도 그친 그 쯤에 있는 등불이다. 어머니의 등불은 그렇게 자식을 기다리는 장님 같은 기인 긴 기다림이었고 긴 긴 세월이었다. 거기에서 언제나 어머니는 길쌈을 하고 계셨고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 어머니는 가셨다. 무거운 인생의 머나먼 짐을 끌고와 지상에 다 내려놓고 내 가슴에 새 등불 하나 걸어두고 가셨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걸어두고 가신 어머니의 등불.
그 등불은 전등불이 아니라 가물거리며 기름 없이 타는 등잔불이다. 세찬 찬바람도 그 곳에서 잦아들고 종일 눈발도 그 곳에서 잦아드는 아늑한 가슴 한 켠에서 타고 있는 등잔불이다.
그 등잔불이 지금도 내 가슴에서 지지지 지지지 앓고 있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의 그친 침묵을 남겨둔 등불이어서일까. 어머니의 그친 설움을 남겨둔 등불이어서일까.
내 가슴에다 걸어두고 가신 어머니의 등불은 이제는 아내의 등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리듯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오는 나를 처마 끝에서 기다리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마중 나가듯 가로등 길가로 마중나가는 내 아내의 등불. 내 아내도 어느덧 내 어머니의 등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등불은 어머니의 등불보다 가깝고 바람 소리도 가깝고 물소리도 가까운, 어머니의 등불보다 밝은 주택가나 아파트 골목 같은 데에 있다.
아내의 등불은 강 건너 통통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등불이 아니다. 승용차를 타고 몇 십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등불이다. 거기에서 TV 연속극을 보거나 반찬을 만들거나 청소를 하거나 하는 등불이다.
어머니의 등불은 희미한 등잔불이나 아내의 등불은 환한 전등불이다. 아내의 등불은 언제나 밝고 환해서 밖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머언 그림자까지 비출 수 있고 나의 생각과 행위를 감시할 수 있다. 나의 지친 침묵을 지켜주는 등불이어서일까. 아내의 지친 설움을 태우고 있는 등불이어서일까.
어머니의 등잔불과 아내의 전등불.
어머니의 등잔불은 희미해도 내 영혼의 그림자까지 비출 수 있고 아내의 전등불은 밝아서 내 영혼의 껍데기까지 환히 비출 수 있다. 이 두 등불이 일생 가슴을 비추고 가슴에서 타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내 후회의 생각과 잘못한 행위들을 아무 이유 없이 받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등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깜빡이는 등불. 그것은 나에게는 더 없는 하늘의 따뜻한 햇볕이요 더 없는 대지의 촉촉한 봄비이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존재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이유이다. 두 등불이 없었다면 두 발로 세상을 어찌 걸어다닐 수 있으며 두 눈을 뜨고 세상을 어찌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은 대물림 한다는데 내 딸들 가슴에도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불을 걸어두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머니는 희미한 등잔불이었지만 딸들에게는 내 아내의 환한 전등불일 것이다. 명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사랑의 차이야 어디 있으랴. 아마도 내 어머니가 내게 물려주신 등불처럼 내 아내도 딸들에게 그 등불을 물려주었을 것이다.
등불은 나에게 아늑함이었고 꿈이었고 용기였고 실현이었다. 그리고 내 삶의 존재 이유였다.
강가에
혼자
왔다간
달빛일지 몰라
누구의
울음
남겨둔
등불일지 몰라
늦가을
그대 기슭에서
한 잔하는
이 가을비
- 내 사랑은 19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