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호 모시장터
431호 모시장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8.25 16:46
  • 호수 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향고양이 커피

선생님, E가 똥 쌌어요.”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교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지고, 모두의 시선이 E에게 집중되었다.

  E는 누렇게 오물이 배어나오는 엉덩이 쪽을 손으로 가리고 겁먹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이를 얼른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씻긴 뒤 변기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 갈아입힐 적당한 옷이 있는지 각 교실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들은 저희는 마치 똥을 안 싸거나 향기가 나는 똥을 싸는 것처럼 코를 싸쥐고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전에 E의 할머니에게 들은 말인데, 녀석은 아무리 급해도 제집 밖에서 똥을 누지 못한다고 한다. 엄마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풀어놓을 곳이 늙은 할머니 옆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현듯 녀석이 여기 저기 흘려놓은 냄새나는 오물들이 서글퍼보였다. 다음 날 아이들의 일기제목은 대부분 ‘E의 실수’였다. 2학년이나 된, 더구나 공부도 썩 잘하는 E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큰 사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리라.   
 
  E는 아침에 냄새나는 것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들은  맛이 있었을 것이다. 고소한 맛, 달콤한 맛, 짭쪼롬한 맛, 쌉쌀한 맛, 그리고 매콤한 맛과 새콤한 맛이 한데 어우러지거나 한두 가지, 또는 서너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음식의 맛을 이룬다. 녀석도 그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키가 크고, 볼에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며, 제법 무거운 것도 불끈 드는 힘이 생겼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똥은 언제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 혀에 살살 녹고 혀의 작은 돌기들이 너무 좋아 춤을 출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도 배설시관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냄새나는 오물이다. 천원도 안 되는 삼립 빵을 먹어도, 단연 최고가라는 칠갑상어 알이나 송로버섯 요리를 먹는다 해도 배설물은 역시 구린내가 난다. 장 속에서 더부살이 하는 세균들이 숙주를 위해 멀쩡한 음식에서 필요한 것들을 뽑아내고 나면 냄새 고약한 찌꺼기만 남게 된다. 간혹 향기 나는 배설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커피를 먹은 고양이 똥이 세계 최고의 커피 원료로 쓰는 경우처럼.
 
  옛날에는 똥을 더럽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가도 똥과 오줌을 참고 집에 와서 거름을 보탰고, 부잣집에서 동네 젊은이들에게 사랑방을 내준 것은 뒷간의 큰 오물통에 거름을 보태라는 뜻도 있었다. 개똥마저 모아들여야했던 시절이 지나니 이제 똥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제가 눈 똥도 더럽다고 엉덩이에 손대는 것까지 꺼려해서 자동으로 씻고 말려 흔적 없이 처리해버린다.
 
  죽기로 작정했거나 죽을 병에 걸려 극약처방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독이 되는 것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돈이라는 놈만은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은데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곪아 터져도 많이 가져보고 싶어 한다. 다른 동물들은 절대로 먹지 않는 그놈을 먹어치우고, 입구와 출구를 강력한 세척기로 말끔히 씻어내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을 먹을 때 배가 너무 부르기 전에 수저를 놓지 않으면 탈이 나서 소화제를 먹어야 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게 되면 죽을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돈이라는 놈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멀쩡한 두 눈이 뒤집어져서 못할 짓을 하게 되고,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집어 삼키면 결국 자유를 잃게 된다. 또 집착하여 쌓아놓으면 변비보다 더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음식을 먹으면 모두가 구린내가 나는 똥을 누지만, 다행히도 돈은 사향고양이 커피처럼 향기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가수의 출연료는 불우 이웃에게서 향기를 발하고, 새우젓 할머니의 비린내 나는 돈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빛을 발한다. 아이가 아끼던 물건을 알뜰 시장에서 판 500원짜리 동전이 불우이웃을 위해 쓰일 때, 그 돈은 무엇보다 향기로운 돈이 된다.
 
  내가 조금씩 모아 놓은 것들도 냄새나거나 독이 되는 것들은 아니었나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을 사향고양이 커피만큼이나 향기롭게 쓸 기회를 가져야 하겠다.  
2008.7

문영 칼럼위원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