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암자의 노스님
이웃 암자의 노스님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9.29 16:10
  • 호수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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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열/칼럼위원

한국사람이면 불교신자는 아니더라도 원효, 의상, 경허, 만공 같은 큰 스님들의 행적이나 어록 읽기를 좋아한다. 나도 불교 서적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는다. 그리고 스님들과 어쩌다 여행 중 열차 안에서 자리를 같이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즐긴다.

내가 사는 곳의 한 집 건너 이웃에 작은 암자가 있다. 노스님이 혼자 수행 중이라 한다. 관심이 아니 갈 수 없다. 절은 대개 산중에 있지만, 이 암자는 고기 냄새 풍기는 민가와 이웃하고 있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지 2년이 지났어도 그 동안 한번도 스님을 뵌 적이 없다. 가끔 이른 새벽 예불 목탁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궁금하다. 하루 종일 무얼 하고 계시는 걸까, 노스님이 어디 몸이 불편하여 누워 계시는 걸까, 두문불출 면벽수행 중인가, 온종일 골방에서 경전만 읽고 계시는 건가, 아니면 저 산중으로 약초를 캐러 가셨나, 저잣거리로 탁발을 나가셨나.

마을 신자들에 의하면 모두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한다. 암자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는 일도 없고, 비를 들고 절 마당을 치우는 경우도 본 적이 없다.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세상의 허물이 내 탓인 듯 부끄러워 꼭꼭 숨어 있는 것일까? 과연 이 암자에 스님이 있는지, 없는지 의문이 갈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나 와도 좋다는 듯, 법당 문은 늘 활짝 열려 있다.

나는 하루 한두 번 암자 앞을 지나가야 한다. 혹시 오늘은 스님을 뵐 수 있을까,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지, 준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암자 앞을 지나가지만 스님을 마주친 적은 없다. 언젠가는 산책하고 오는 길에 가만가만 법당 앞까지 다가가서 작은 인기척을 내어 보았다. 스님이 나타나지 않는다.

스님 계십니까, 서천에서 이웃으로 이사온 사람입니다.

정식으로 문안인사를 드렸으면 스님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색하게 절 마당에서 서성이다 내려왔다.

이러기를 수 차례, 하지만 스님은 뵙지 못했다. 스님을 만나 시답지 않은 소리 몇 마디 할 바에야 그냥 내려오는 것이 좋았다.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어허 나 선생, 본래무일물 (本來無一物)인 걸, 뭘 허둥지둥 그리 찾고 계신가?

하며 소리 없는 말을 걸어 오는 듯 했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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