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수·준(共感水準)
공·감·수·준(共感水準)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11.24 14:21
  • 호수 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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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식우송정보대학 교수

#1 한참 지난 간 이야기이다. 머리를 다듬으려고 미용실에 갔었다. 조금만 잘라 달라고 주문하고 깜빡 졸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 짧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아 버렸다. 너무 속상해서 투덜거려보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가는 곳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나와 미용사간에 서로 짧다는 의미가 달랐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머리를 기르고 싶으니 조금만 다듬어 주세요.’라고 구체적인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였고 다소 진지한 이발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2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많이 헷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과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다.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힘껏 발버둥쳐왔건만 상대방의 수준에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정에 인색한 사람이면 말짱 꽝이다.

소통이 없다. 아니 오히려 오해가 생겨나기도 한다. 특히 공익(公益)을 가장한 사리사욕이 숨어 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그래서 모르는 게 나은 적도 많다. 하지만 쉽게 이해는 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오늘도 화합을 외치면서 분열과 갈등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3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어찌되는 것인가? 능력도 없으면서 의욕만 앞선다면 큰일일 것이다. 새삼 리더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공사(公私) 구분도 못하고 동시에 정확한 현실파악도 못하고 자신의 고집만 앞세운다면 그 조직은 어찌되는가? 강요된 거짓충성으로 인정받는다면 아마 그 집단은 엉망진창이 될 듯싶다.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값어치(역할)를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아니 그런 부류들이 판치고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갑자기 흙탕물에서는 발을 씻고 맑은 물에선 갓을 씻으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4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 있다. 고객에게 관심을 가지고 초점을 모아 기쁨을 주며 기댓값 이상으로 실제 값을 안겨준다면 그것이 만족이 된다는 단순한 이치이다. 그런데 매일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왜냐하면 서로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하지 못한다면 겉과 속이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 듣기 좋은 가르랑 말보다는 불평불만 가득 찬 으르렁 말들이 많이 오고 갈 것이다. 수준 높은 감동과 감격이란 단어는 엄두도 못 낸다.

 #5 진정 함께 누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기와 질투가 없고 진정한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분위기 형성은 힘든 것일까? 우리 사회를 보고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게’라고 표현한 외국인의 말이 생각난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접어들면서 따뜻한 이웃들이 그리워진다. 그래서인지 보다 더 객관타당한 자세로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는 각오도 해 본다. 가능한 내 입맛에만 맞추지 않고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생활을 다짐해 본다. 그러자면 먼저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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