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 안인수씨·종천 김광규씨 장한어버이상 수상
비인 안인수씨·종천 김광규씨 장한어버이상 수상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11.16 09:25
  • 호수 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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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물려줄 수 없다” 1남 5녀 모두 대학까지 교육
동생들·자녀 교육 이어 경로효친 사상 전파에 큰 공로

▲ 장한어버이상을 수상한 김광규씨 부부(왼쪽)와 안인수씨 부부(오른쪽). 가운데, (사)한국효도회 이사장과 부이사장.
안인수씨(80. 비인면 서인로 1151번길)와 김광규씨(73. 종천면 산천길 105번길)가 (사)한국효도회에서 수여하는 제17회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지난 달 31일 서울 시의회 의원회관 별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안인수씨는 부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1남 5녀를 대학교까지 졸업시켜 사회에 진출시켰으며, 자녀들에게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키고 매년 마을 경로잔치를 일부 자부담을 들여 주도적으로 실시한 공적으로 이 상을 수상했다.

김광규씨는 부모님에 대한 효행과, 어려운 형편에 어린 여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출가시켰으며, 자녀들을 각별한 가정교육으로 가르쳐 경로효친 사상이 몸에 배이게 해 사회에서 칭송을 받고, (사)한국효도회 서천군지역회장을 맡아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적으로 상을 받았다.
이들이 살아온 인생 역정은 아래와 같다.

<안인수씨가 살아온 길>
안씨는 비인면 칠지리 28번지에서 부 안종국, 모 신상옥 사이의 6남 1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형편으로 비인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의 일을 돌보며 부모님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27세 되던 해 주산면 금암리 임매화씨와 결혼해 1남 5녀를 두었는데 안씨는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줘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심으로 1975년 여름 취로사업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석축공사 주수를 하게 된 인연으로 석공 기술을 연마하여 그 후 충남, 전북 등 지역에서 많은 도급공사를 맡아 가난을 물리치고 1남 5녀를 모두 대학교까지 가르쳤다.

또한 안씨는 매년 자부담을 보태어 주도적으로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있으며 부모의 효행을 보고 자란 자녀들도 수시로 부모님을 찾아뵙고 마을 경로당을 방문 음료수와 술, 과일 등을 어르신들께 대접해오고 있다. 이러한 자녀들의 효행은 안씨의 각별한 가정교육에서 나온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고 있다.

<김광규씨가 걸어온 길>
김씨는 종천면 산천리 350번지에서 부 김병찬과 모 이정환 사이의 1남 2녀중 아들로 태어나 아버님 직장이 있는 이북 흥남에서 3살 때 해방을 맞아 이남으로 내려와 춘천사범학교 부설 초등학교 1학년 재학 중 6.25를 만나 피난 길에 나서 부모와 함께 고향인 산천리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가난으로 식생활 해결도 어려웠지만 부모님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서천초, 서천중, 서천고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1학년년 때 아버님께서 폐결핵에 걸려 전주 예수병원까지 가서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자 토지와 집까지 매각하고 민간요법을 수소문해 개와 뱀까지 탕으로 만들어드렸으나 1963년 그의 나이 20에 4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당시 김씨는 군청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박봉의 월급에 가난한 집 가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각고면려하여 두 여동생을 고등학교까지 가르쳤으며 어머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치매와 노환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지만 김씨는 수시로 목욕을 시켜드리고 가까운 노인요양병원에 입원시켜 드렸으며 편한 임종을 맞도록 했다.

김씨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1남 1녀를 대학교까지 가르쳤으며 웃사람을 공경하고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어 경로효친 사상을 심어주었다.

김씨는 2002년부터 (사)한국효도회 서천군지역회 사무국장을 맡아 서천 관내를 두루살펴 효행자와 장한 어버이를 발굴 추천하여 현재까지 70여명을 수상토록 했으며 이의 정신을 널리 알려 서천 사회가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살아있도록 하는 데 큰 공을 세우는 한편 2007년부터는 유림에 입문하여 비인향교 전교로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사자소학, 예절 교육 등을 시켰다. 또한 2013년 2월부터 충남향교재단 감사를 수행하고 있으며, 2014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성균관 감사직을 수행하면서 인성회복과 도덕 부흥에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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