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이 우울증이라면 이해 안 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우울증이라면 이해 안 되지만…”
  • 글/사진 공금란
  • 승인 2017.02.15 15:35
  • 호수 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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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좀 의아했습니다.

76세라는 연세가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젊고 고우십니다. 또한 말     그대로 남부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첫마디 또한 “나 같은 사람이 우울증이라면 남들은 전혀 이해 안 될 겁니다. 저 역시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은 6년 째 우울증 치료제에 의존 해 살던 중 친정 오라버니께   서천군 보건소에 대한 안내를 받고 찾아가 보건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공연히 슬프고, 허전하고, 외롭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괴로움이 더해졌다고 하십니다.  남들이 보기에 동정 받을 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기에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혼자 괴로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아내 ○○○ 어르신도 인정하는 ‘천사표 남편’은 처음 보는 제 눈에도 자상하기 그지없어 보이셨습니다. 철도청(현재 코레일) 공무원으로 입사해 32년 근속하고 정년을 하신만큼 경제적으로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을 나온 남편은 배움이 짧은 아내에게 한 번도 무시하는 말을 할 적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어두운 아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큰 글씨로 써주고,  입이 자주 마르는 아내를 위해 늘 자리끼를 손수 챙겨다 놓을 정도입니다.

또한 1남2녀 자녀들도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걱정이 없습니다.
함께 사시다가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께도 선하기 이를 데가 없으신 게 남편이 꼭 시어머니를 닮으셨답니다. 굳이 어려움이란 것을 찾자면 홀시아버지를 22년 동안 모신 것이지만 이 또한     어렵다는 생각 없이 대화도 자주 하며 잘 지내셨답니다.

세상에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싶었는데 ○○○ 어르신은 일상에서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으신 분 같았습니다. 어르신 스스로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누가 봐도 걱정거리라곤 없는 분.   이런 경우에 누구에게 하소연 해 봤자 “팔자 좋아서 그렇다”는 핀잔을 들을 게 뻔합니다.
3년 째 우울증을 극복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극도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신 분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유 없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더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다행히 보건소에 다니면서 마음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만들기나 노래교실 등 여러 가지 하긴 하지만 특히 격하지 않게    운동하는 ‘태극권’을 좋아하십니다. 

아직도 약은 복용하고 있지만 덕분에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거북스럽지 않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단짝 친구도 사귀셨습니다.

○○○ 어르신의 안마당 텃밭은 화목한 가정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주인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원수들, 가을의 전령 주홍 빛 만추국, 감칠맛 나는 김장을 위한 배추와 무, 보기 좋고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차 한 잔 하고 싶은 테이블과 의자…, 이 모든 것은 남편이 가꾸고 살피는 것들입니다.
열무를 뽑아서는 말끔히 다듬어 아내에게 건네는 남편의 모습은 모든 여인들이 바라는 남편상이 아닐까요.
○○○ 어르신은 남편이 이렇게 챙겨 줄 때마다 “수고 하셨어요, 사랑합니다” 하고 볼에 입을 맞춘 답니다.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주 독특한 닭살 부부입니다.
70대 노부부의 로맨스는 부끄러움이 아니며 주책은 더욱 아니고 숭고함까지 느껴집니다.

○○○ 어르신은 남편이 가꿔 놓은 꽃에 얼굴을 비비며 향기를 나누고 대화를 나눕니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나아가   사람들에게도 대화를 나눕니다. 마음을 바꾸니 이제 삶을 포기 하고 싶지도 않고 곧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들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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