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보신탕 유래와 축제
판교보신탕 유래와 축제
  • 뉴스서천
  • 승인 2003.09.19 00:00
  • 호수 1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판교에서 보신탕 냉면 축제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후 서천군청 홈페이지에는 그 축제에 대한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찬성한다는 글도 있고 반대한다는 글도 있었다.
반대하는 쪽의 글은 비아냥거리는 글들이 많았다. 그 이유인즉 서천을 국제적으로 망신시킨다는 것이다. 서천 망신이 아니고 나라 망신이라는 것이다.
찬성하는 글은 음식문화의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구명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판교는 보신탕으로 많이 알려진 지역이다. 그 음성적인 판교 음식 문화를 이제 양성화시켜 판교면을 보신탕의 대명사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찬반의 논리가 팽배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행사를 추진하는 판교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판교의 보신탕이 알려진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유래를 통하여 판교의 보신탕 축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1770년에 신경준이 작성한 도로고에 보면 판교장이 5일마다 서고 있다. 다른 여느 장과 다름이 없겠지만 판교장을 특별히 백중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음력 7월 15일이 되면 판교 주변에 살고 있는 머슴들이 꽤 많이 몰려들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날은 논농사를 짓느냐고 수고했다고 하루를 마음껏 놀게 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머슴에게 돈을 주어 시장에 나가 몸보신을 하도록 했으며 이 날만큼은 농사일을 하지 않고 풍물을 치고 즐겼다고 한다. 이 날 머슴들은 주로 보신탕을 사 먹으려고 판교장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후 판교장은 보신탕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연세를 드신 어른일수록 백중날 무엇을 했냐고 여쭤보면 대개가 판교장에 가서 보신탕을 먹었다고 답변을 한다. 보신탕은 머슴들의 보신으로는 가장 좋은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백중날 주인들이 준 돈을 가지고 보신탕을 사 먹음으로서 그동안 논농사를 지으며 고생한 몸을 보신한 것이다.
이렇게 백중날 몸을 보신하기 위한 머슴들이 모여 보신탕을 먹었다고 하지만 언제부터 판교에서 보신탕을 팔았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교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신탕을 돈 받고 팔았다는 말이 구전되고 있다. 그럼 예전에는 어떻게 보신탕을 먹었냐는 것이다. 대개 마을에서 개를 잡는 경우 공동으로 탕을 끓여 나눠먹었다는 것이다. 판교에서는 그 수요가 증가하자 돈을 받고 보신탕을 팔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판교는 보신탕 문화의 선구적인 지역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백중날 머슴들이 모여들었으며 머슴들은 몸을 보신하고자하여 보신탕을 찾게되자 보신탕은 이제 음식 상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판교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보신탕은 보신을 위한 음식에서 초상집을 찾은 조문객의 접대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다른 지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초상집 음식이 되었다. 서천, 부여일부 지역에서 상가집 음식으로 보신탕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서천의 대부분의 상가집에서는 보신탕을 제공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일부 지역에서만 보신탕을 상가집에서 접대 해왔지만 1990년 서천 두왕리 콜레라 사건이후 보신탕 제공은 더욱 증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지역의 특수한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음식 문화 역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말고기를 먹는 민족이 있으며 달팽이 요리를 고급으로 여기는 민족이 있다. 개고기 역시 민족, 사람에 따라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신탕을 어떤 방법으로든 즐기고 있다.
필자는 판교 보신탕 냉면 축제가 지역 문화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나 찬성하는 쪽 모두 사회적인 여론과 그 성패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다. 판교 주민들이 스스로 축제를 해보겠다고 멍석을 깔았으니 이를 지켜봄직 하다. 우려했던 것처럼 비난받아야 마땅한 축제라면 다음해에 사라질 것이고 그 생명력이 있는 축제라면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모처럼 새로운 지역 문화를 창출하는 판교 주민들의 사기를 꺾지 말았으면 한다. 단 행사 일정을 음력 7월15일에 맞춰서 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역사기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