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인문학, 아직은 그림의 떡인가
■ 모시장터-인문학, 아직은 그림의 떡인가
  • 칼럼위원 권기복
  • 승인 2018.07.11 16:35
  • 호수 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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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서 시집을 선물 받았다. 시를 쓴 경력으로는 필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3번째 출간된 시집이었다. 아주 반가운 마음에 한동안 몰두하여 정독하였다. 어느새 나의 감성도 그 시인의 감성 속에 들어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한 시인의 문학 속 산책을 즐기는 시간을 보냈다.

한편 부러운 마음과 함께 질투심도 일어났다. 그 시인이 3집을 낼 정도면, 나는 6집은 냈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개인 시집은 아직 한 권도 내지 못했다. 시집 한 권에 대개 60~80여 편의 시가 담긴다. 그렇게 단순 계산하면, 그동안 쓴 시가 적어도 10권의 시집으로 묶였어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주변의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시집 출간을 저어했다. 스스로의 작품에 대한 불만족인 면도 있고, 나의 시집이 아무렇게 뒹굴어 다니는 모습을 볼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에 책 사서 보는 것을 즐겨했다. 변변치 못하나마 용돈이 생기면 우선 서점으로 달려갔다. 서점에서 나올 때 손에 쥔 서너 권의 책 중에는 꼭 시집 한 권은 끼어있었다. 그렇게 모은 책들은 전국 어느 곳에 가서 둥지를 틀더라도 책장에 꼭꼭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상석에는 필자가 가장 좋아한 시집들이 자리를 잡았다. 친구가 방문해서, “야! 너는 책 속에 깔려죽게 생겼다. 쓸데없는 책은 좀 버려봐라.” 걱정해 주기도 하였다.

그 책들의 굳건한 자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결혼한 후부터였다. 필자의 책들은 대부분 방에서 쫓겨나서 마루나 베란다로 가고, 창고로 들어갔다. 방에서 쫓겨난 책들은 필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곰팡이 슬고, 부패되면서 폐기물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렇게 살아온 지 30년을 채워가고 있지만, 지금도 부부간에 가장 말다툼이 많은 것이 책 문제이다. 아내 말로는 “여기저기 책 걸려서 정신이 없다.”, “제발 책 좀 치워 달라.”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한 뭉텅이의 책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열심히 찾다가 아내에게 물어보니, “당신, 다 읽은 책 아니냐?” 하면서 묶어서 종이 재활용 창고에 버렸다고 하였다. 때로는 그곳에 가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만 골라온 적도 있고,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만큼 요즘 사회는 인쇄물 범람의 사회이기도 하다. 필자에게 우편배달 되는 책들 중에서 완독되는 경우도 극히 드문 게 사실이다. 시집도 한 달이면 서너 권씩 배달된다. 어떤 시집은 서너 편만 읽고 접어두었는데, 종이 재활용 창고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30년 전만 하여도 시집이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 입구의 화려한 가판대에 자리 잡곤 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곧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그러나 요즘 세태에서는 시집이나 소설에서 베스트셀러가 없다. 그나마 시집이나 소설은 서점의 구석자리에 쳐 박혀 독서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 정보화 시대, 4차원의 최첨단 과학세계로 진입하는데 있어서,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갑자기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요즘의 서점 중심 가판대에 놓인 책들을 보면, ‘인문학’이란 말이 책 제목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있다. 마치 인문학이 없는 경제, 정보, 과학은 ‘앙꼬 없는 찐빵’인 것처럼 각색되어지고 있다. 정작 인문학이란 화려한 포장 속에서 문학과 철학, 인문사회학과 같은 알맹이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메말라 죽어가고 있다. 주로 인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인문학부 대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입학과 함께 실업자 신분증을 발급받은 상태와 다름없다.

필자는 꿈을 꿔본다. 어느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여 선물하면 가장 소중한 ‘나의 책’이 되는 그 날을, 좋은 소설을 읽고 서로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하는 그 날을, 인문학부를 졸업하여도 당당하게 직장을 다니면서 정보나 과학과 스스럼없이 교류할 수 있는 그 날을. 바로 그 날이 왔을 때, 우리들은 넉넉한 경제생활과 함께 풍부한 감성 생활을 누리면서 ‘삶의 질’이 참 높아졌다고 바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인문학’이 그림의 떡이 아닌, 우리 식탁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맛있는 떡이 되도록 진정한 인문학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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