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앨범(2)
아빠의 앨범(2)
  • 뉴스서천
  • 승인 2003.10.31 00:00
  • 호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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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모두 화가 난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그리고 똑같은 표정들,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3학년 1반.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라고 큼직하게 적힌 글씨 아래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왕만두집 보라 아빠입니다. 대현이 말대로 얼굴살이 엄청납니다.
“김철봉” 와아, 이름이 김철봉이라니, 너무 웃깁니다. ‘동생은 그럼 김그네인가?’ 하며 한 장을 넘기는데 세탁소 아저씨가 시커먼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습니다. 지난번 화장실 뒷편에서 싸울 때 보았던 영민이 얼굴과 똑같습니다. ‘아마 이 아저씨도 눈빛만 쎄지 주먹은 약할거야.’ 생각하며 한 장을 더 넘기니 “현진성” 익숙한 이름과 얼굴이 나옵니다. 큰아버지입니다. 큰아버지가 어렸을 적 너무 아파서 2년이나 늦게 학교에 들어갔었다는 이야길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빠는 형의 가방을 매일 들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현우성, 현우성” 하나 하나 짚어가며 아빠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도록 현우성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보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아빠는 없습니다. 분명 대현이 아빠랑 함께 도시락 매고 학교 다녔다고 했는데, 이상합니다.
“대현아, 나 그만 갈래.”
“왜? 더 있다 가.”
“안돼. 지금가야 검도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출 수 있어. 더 늦으면 우리 엄마 눈치챈단 말야.”
“넌 게임도 별로 안했잖아.”
그제서야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대현이가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괜찮아. 우리 엄마 화나면 무지 무섭거든. 너 우리 엄마 별명 알지?”
“알어. 나침반 시계. 니네 엄마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 제 시간에 가야 된다며?”
“응, 지금 엄마가 가리키고 있는건 집이야. 아쉽지만 나 간다. 너도 적당히 해. 니네 아빠 교회 주보 다 찍고 금방 들어 오실거야.”
“알았어. 어서 가. 그런데 니네 아빠 찾았니?”
녀석이 무얼 물어보는지 알았지만 “그럼 우리가 이산가족이냐? 못찾게?”하고 엉뚱한 대꾸를 해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웬일인지 아빠가 와 계셨습니다.
“어? 아빠. 오늘 가게 문 일찍 닫았네?”
“응, 오늘 병원가는 날이잖아.”
“아, 그렇구나. 검사했어요?”
“그럼, 우리 아들은 공부 잘하고 왔나?”
“그, 그럼요.”
“어? 대답이 영 시원찮은데……….”
“아, 아니예요. 뛰어와서 그래요. 그런데 아빠 궁금한 게 있는데요, 대현이네 아빠랑 학교 같이 다녔다고 했죠?”
“응.”
“이상하다. 오늘 대현이네 집에서 아빠 중학교 졸업 앨범을 봤는데 아빠가 없었어요. 세탁소 아저씨도, 대현이네 아빠도 왕만두집 아저씨도 다 있는데 아빠만 없었어요. 같이 다닌 거 아니었어요?”
“어? 어∼그거. 응, 그러니까.”
조금 전 나처럼 아빠가 말을 더듬으십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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