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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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2.27 00:00
  • 호수 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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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할아버지. 산내리 가는 버스 여기서 타는 거 맞아요?”
형은 다 낡아서 속에 있는 솜이 터져 나온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산내리? 아! 저기 고개 너머 산내리? 여기서 타는 거 맞긴 헌디, 어쩌냐?
방금 버스가 떴는디…”
“버스가 가버렸어요? 다음 버스는요? 또 오긴 하죠?”
“저기 써있는 시간표대로야 앞으로 두 대나 더 있지. 허지만 요즘은 하도 버스가 내 이빨맹쿠로 빼먹길 잘하니 좀 기다려봐야 쓰겄다.”
할아버지는 의자를 조금 비껴 앉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셨습니다.
우리가 등에 맨 가방 말고도 엄마가 이것저것 준비해 주신 가방이 제법 무거운데도 형은 할아버지 곁에 앉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오고 가방은 자꾸만 무거워지는데 버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오는 버스마다 달려가서 확인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운전사 아저씨게 물어보곤 했지만 산내리 버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집에서는 날아가는 것 같던 시간이 돌을 맨 것처럼 아주 느리게 가고 있었습니다.
“치익∼” 라이트를 켠 버스 한 대가 우리 앞에 섰습니다.
버스 앞엔 분명 산내리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도 의심이 가는지 형은 올라서기 전에 다시 한번 묻습니다.
“아저씨 이거 산내리 가요?”
“야, 임마. 거기 앞에 써 있잖어. 한글 몰라?”
되돌아온 퉁명스런 아저씨 목소리에 반가운 마음이 풀썩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치이, 형. 시골 사람들은 마음씨도 좋고 친절하다더니, 그렇지도 않다. 그치?”
“조용히 해. 아저씨 들을라. 이 버스에 우리 밖에 없잖아.”
“어? 정말 그러네. 뭐, 이렇게 사람이 없냐? 무섭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형이 있는데.”
그 말을 하며 형도 우스운지 약간 입을 실룩거렸습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난 소리내서 웃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버스만 타면 할머니네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둘 다 마음이 넉넉해져 있었습니다. 산내리로 가는 길은 아저씨가 크게 틀어놓은 음악처럼 구불구불했습니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버스는 우릴 본 적도 없다는 듯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할머니네 집 찾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던 형은 아무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치?”
“응. 그 앞으로 가다가 왼쪽 사잇길로 들어가면 되는데.”
“맞어. 그런데 느티나무가 없어.”
“형 저거 아냐?”
“무슨? 되게 컸는데?”
“아니, 우리가 봤을 땐 이파리가 많았던 때니까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몰라.”
“어쭈! 그런 생각을 다 해내고? 대단해요∼”
우린 앙상한 가지만 남아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선 나무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계속 designtimesp=19791>

<함께읽는동화 designtimesp=19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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