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12회)
키 대 보기 (12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3.05 00:00
  • 호수 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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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저녁에 을씨년스럽게 우뚝 서 있는 나무쪽으로 걸어가면서 사실, 철수 녀석에게 말은 안했지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
엄마 아빠랑 함께 왔었던 그 풍경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꾸 버스에서 잘못 내린것만 같았습니다. 한번 더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이곳에 산내리란 곳이 또 있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었지만 철수에게만큼은 내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내 손을 잡은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형, 그 나무 맞지?”
“응? 그, 글쎄…….”
대답이 자꾸 뒤로 도망가려고만 할 때 나무 저 뒤쪽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쑥 나왔습니다.
“옴마야!”
우리 둘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서로 꼭 껴안았습니다.
“영수냐? 철수여?”
낯익은 목소리였습니다.
“할머니?”
“아, 왜 이제야 오냐? 할미 속타 죽을 뻔 알았구먼. 도착할 때가 훨씬 지났다는디, 오지는 않구, 자꾸 전화허면 니 에미 놀랄 것 같구, 가슴이 글쎄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어요.”
“뭐? 사고? 안 다쳤어?”
할머니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어둠 속에서 우리들 몸을 손으로 만져보십니다.
“할머니, 우리가 탄 버스가 사고난 게 아니고요, 다른 차가 사고가 나서 길이 꽉 막혀버렸거든요. 그래서 늦었어요.”
나는 큰소리로 천천히 말했습니다. 오래전 오른쪽 귀를 다치셨다는 할머니는 이제 왼쪽 귀로만 들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휴∼ 할미 오늘 가슴이 다 오그라들겄구먼. 자꾸 놀래서.”
“오늘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어느새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걷던 철수가 큰소리로 묻습니다.
“오늘 낮이부텀 여직 기다렸거든. 두 시 차 타고 올라나? 정류장에 나가보고. 또 세시에 나가보고. 버스가 아무도 안 내려놓고 휙 지나칠때마다 버스 문 두드리고 올라가서는 휘이 둘러봤당게. 우리 손주들이 혹시 모르고 못 내린 건 아닌가 해서. 늬들 얼굴이 안 보일때마다 할미 놀랬지 뭐여. “
“하하하, 할머니 그럼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혼났겠다.”
“암만, 혼났지. 늙은이가 왜 그러냐고 혼났지. 그려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당께. 우리 손주들 얼굴 보고잡허서.”
나도 철수처럼 할머니 손을 잡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살며시 할머니 손에 들렸던 짐을 내 손으로 옮기고 할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거칠거칠하고 딱딱한 손이 아주 따뜻했습니다.
<계속 designtimesp=19833>

<함께읽는동화 designtimesp=1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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