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13회)
키 대 보기 (13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3.12 00:00
  • 호수 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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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걸 빼고는 시골에서의 겨울방학 보내기는 생각만큼 힘들거나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7시만 되면 할머니가 아침상을 내밀며 어서 먹으라는 통에 철수도 나도 어거지로 밥수저를 입안에 떠밀어야 했습니다.
할머니만 아침잠이 없으신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았습니다.
눈을 반쯤 감고 밥을 먹고 있는 우리들을 보러 앞집 할머니도 오시고, 뒷집 명석이도 옵니다. 명석이는 이곳에 와서 사귄 친구인데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이입니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서 할머니랑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씩씩해서 아픔이 있는 아이인줄 몰랐는데 어느 날 밤 할머니가 밤을 까서 우리 입에 넣어주시며 “ 명석이도 서울서 살았었다는디, 그런 얘기 안하지? 말 안하고 있는 건 지금도 많이 속상해있다는 건디, 잘 혀줘야 쓴다.”하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명석이 형아는 왜 이사왔어요?”
입 속에 밤을 우물거리며 철수가 물었습니다.
“잉, 엄마 아빠가 갈라섰다는구먼. 애들이 불쌍허지. 명석이 동상은 지 외갓댁으로 갔다는디.
어린 것들이 얼마나 정에 굶주릴까, 휴∼”
할머니는 정말 가슴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쉴 사이 없이 할머니 손에서 밤 껍질이 벗겨지기만을 기다리던 우리들도 아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철수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철수도 할머니도 서울에 계신 엄마, 아빠 모두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명석이 동생을 잠깐 떠올려보았습니다.
읍내 장날이라고 할머니가 장 구경을 가자고 하셨습니다.
두 시간마다 한번씩 오는 버스여서 놓쳐서는 안된다며 40분이나 먼저 정류장에 나가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류장에는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계셨습니다.
다들 한 시간도 더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습니다.
“얘들이구먼, 박이장댁 손주들이.”
아랫니가 두 개밖에 남지 않아 홀쭉해진 입을 벌리고 웃으시며 낯선 할머니 한 분이 철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인사를 하자 “앗따! 그놈들 쓰게 생겼다. 인사도 잘 허고.”
머리엔 에스키모인들이 쓰는 것 같은 갈색 모자를 쓰고, 발에는 털 달린 고무신을 신으신 할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시자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얘들이 공부도 얼마나 잘허는지 모른다요, 허지 말라고 혀도 늘상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디 잠깐 머리 좀 식히라고 지 에미가 보냈당게.”
할머니 말씀에 우리 둘 다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어? 명석이 형아다.”
철수가 저 멀리 전봇대 뒤에 서 있는 명석이를 발견했습니다.
“명석아!”
우리는 명석이를 부르며 달려갔습니다. <계속 designtimesp=19886>

<함께읽는동화 designtimesp=19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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