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석가탄신일의 명칭을 2018년부터 ‘부처님오신날’로 변경했다. 석탄절(釋誕節), 불탄일(佛誕日), 초파일, 사월 초파일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날은 성탄절과 함께 공식 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성탄절의 명칭은 뭐라고 되어 있을까? 성탄절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기독탄신일’이 법정 용어로 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 까닭에 이 용어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부처님오신날과 관련해서 특이한 낱말 하나가 국어사전에 나온다.
팔일장(八日粧): <불교>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4월 8일로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다. 이날에는 파일등을 단다. 8일 및 9일의 이틀 밤에는 집집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등에 불을 켜 달고 그 아래서 물장구를 치거나 풍악을 하고, 딱총과 불놀이를 하며 느티나무의 잎을 넣어 만든 시루떡과 검정콩을 쪄서 먹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인데, 무척 자세한 설명을 달아놓았다. 풀이를 보면 부처님오신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석가탄신일’과 ‘부처님오신날’ 항목에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 음력 4월 8일이다.’라는 내용으로만 간단히 기술하고 말았다. 팔일장(八日粧)이라는 낱말은 아는 이도 드물 텐데, 무언가 앞뒤가 바뀐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팔일장’이 표제어에 있으며, 풀이는 ‘부처님오신날’과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팔일장(八日粧)이 부처님오신날과 같은 뜻을 지닌 낱말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건 끝에 붙은 장(粧)이라는 한자 때문이다. 장(粧)은 화장(化粧)이라는 낱말에서 볼 수 있듯 곱게 꾸민다는 뜻으로 쓰는 한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월 팔일이면 조선에서는 자래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새옷을 갈어 입고 기뻐하엿다 합니다. 더욱 게집아이들은 팔일장(八日粧)이라고 하야 고운 때때옷을 입고 노는 것이었습니다.(동아일보, 1935.5.10.)
이번에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관등놀이(觀燈-)’라는 항목에 나오는 서술을 보자.
▶한국적 파일놀이의 중핵을 말한다면, 그것은 등(燈)이며 관등(觀燈)놀이이다. 팔일장(八日粧)은 이때의 아동천국(兒童天國)을 상징하며 예쁘게 치장하는 놀이이고, 다른 놀이들은 초파일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니까 팔일장은 부처님오신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날 여자아이들이 예쁜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놀이를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어린이날이 따로 없던 예전에는 부처님오신날에 어린이들이 여러 놀이를 하며 즐기도록 했다고 한다. 국어사전의 오류 덕분에 예전 풍습을 공부할 수 있게 됐으니 망외의 소득을 올린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팔일장 풀이에 나오는 ‘물장구’는 아래처럼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두 번째의 뜻으로 사용했다.
물장구: 1. 헤엄칠 때 발등으로 물 위를 잇따라 치는 일. 2. <민속> 병신굿에 쓰는 악기의 하나. 물을 담은 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그 바가지를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