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50) / 재가승(在家僧)
■ 박일환의 낱말여행 (50) / 재가승(在家僧)
  • 박일환
  • 승인 2023.06.22 00:20
  • 호수 1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경도 변경의 여진족 일파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우리나라에도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었을까? 그 옛날 중국이나 일본, 몽골, 심지어 아랍 쪽에서 건너와 정착해서 살던 이들이 있었다. 덕수 장씨의 시조가 바로 아랍계인 위구르족 사람이었다는 건 많이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이들은 귀화인일 뿐 부족 집단을 이루어 살던 소수민족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두만강 주변에 소수민족으로 볼 수도 있는 집단이 살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따져보기 전에 낱말부터 소개한다.

재가승(在家僧): 1. <불교> 속가(俗家)에서 불법을 닦는 사람. 2. <불교> 예전에, 함경북도 변두리 지방에서 아내를 얻어 살던 승려.

두 번째 풀이에 나오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가승이면 다 같은 재가승이지 왜 하필 함경북도에서 살던 사람들을 특정해서 지칭하는 명칭으로 삼았을까? 조선왕조실록의 영조 편에 경흥(慶興) 지역에 떼를 지어 사는 재가승들이 국경을 넘어온 청나라 상인들과 결탁해 밀무역을 해서 이득을 취하는 폐단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재가승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서술은 없다. 그런 반면 근대 이후에 나온 기록들은 대체로 여진족 일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고려 때부터라고도 하고 조선 초 육진(六鎭) 개척 시대부터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둘 다 확실치는 않다. 대부분 머리를 깎거나 변발을 했다고 하는데, 그걸 이유로 그들이 승려였다고 하는 것 역시 신빙성이 부족하다. 조선 시대에는 중을 낮춰보았기 때문에 성()도 없이 산속에서 천민 취급을 받으며 살던 이들을 중에 빗대어 재가승이라 했을 거라는 설도 있다.

1935년에 동아일보는 이재욱이라는 사람이 재가승만고(在家僧漫考)’라는 제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재가승을 다룬 글을 실었다. 재가승의 유래에 대해 이재욱은 그동안 제기된 몇 가지 설을 소개하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정 짓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들이 여진족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1930년대 중반에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가승의 숫자를 3,500명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정확하다고 보기 힘들며, 193854일 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약 육칠천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원까지 합치면 그 숫자의 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재가승들을 여진족으로 보는 이유로 언어와 풍습이 우리와 다른 점을 들고 있다. 재가승은 산간 지역에서 그들만의 부락을 이루어 살며, 결혼도 집단 내에서만 했다. 장례는 매장 대신 화장을 택했고, 제사 지낼 때 여자들만 참여했다는 등 여러 면에서 우리 풍습과 달랐다고 한다. 언어 관련해서는 여진족이 사용하던 퉁구스어 계열이 아니라 함경도의 육진 방언과 큰 차이가 없으며, 세금과 군역을 피해 숨어 들어간 사람들일 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함경도 말은 여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들이 조선 땅에 들어와 수백 년을 사는 동안 언어가 동화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해방 전 기록들을 보면 함경도 사람들이 재가승들을 여진족 출신으로 보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머리를 깎고 동무를 표하느라고 남들은/ 집 중이라 부르든 말든/ 在家僧(재가승)이란 그 女眞(여진)遺族(유족)”

함경북도 경성 출신인 김동환의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에 나오는 구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