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54) / 송강금(松江琴)
■ 박일환의 낱말여행 (54) / 송강금(松江琴)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07.20 06:30
  • 호수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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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의 거문고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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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과 함께 지금도 널리 연주되고 있는 전통 현악기인 거문고는 고구려 때 왕산악(王山岳)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같은 종류라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의 가치란 뛰어난 기술로 잘 만든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나 독특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 고구려 시절부터 거문고를 만들어 연주해 왔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종류의 거문고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까?

송강금(松江琴): <음악> 송강 정철이 간직하고 있던 이름난 거문고. 성삼문의 집 뜰에 있는 오동으로 앞판을, 박팽년의 집에 있는 오래된 밤나무로 뒤판을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육절금.

표준국어대사전에만 실린 낱말이며, 유의어로 제시한 육절금(六絕琴)도 같은 뜻을 가지고 표제어에 올라 있다. 왜 육절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거문고 줄이 여섯 개라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겨레음악대사전(2012, 보고사)에 따르면 이규경(李圭景)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31에 송강금이 나온다고 하는데, 내용은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와 똑같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재료로 삼아 거문고를 만드는 건 분명하지만, 송강금이 실제로 있었는지, 그게 성삼문과 박팽년의 집에 있던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게 확실한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일종의 백과사전 형식을 띤 책인데,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실은 것도 많기 때문이다. 정철이 거문고를 좋아했다는 건 그가 남긴 시조와 가사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거문고를 갖고 싶어 했으리란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송강금이 국어사전 표제어에 실릴 만한 낱말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송강금에 대한 자료를 찾다 성삼문 오동나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성삼문의 생가가 충남 홍성군의 노은리에 있는데, 성삼문이 과거 급제했을 때 집 앞에 있는 오동나무에 북을 달아 힘껏 쳐서 축하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송강금이 실제로 있었다면 노은리 생가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서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오동나무가 퍼뜨린 후계목이 있는데, 2011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그 오동나무를 널리 보급해 성삼문의 충절을 기억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 후 충청남도 산림환경연구소가 대량 증식에 성공해 여러 곳에 분양했고, 2016년에는 경기도의 고양오금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성삼문 오동나무를 학교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성삼문은 노은리에서 태어났지만 그 후에는 서울 종로의 화동 23번지, 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 문일평이 남긴 호암전집에 따르면 그곳에 성선생수식송(成先生手植松)’이라고 쓴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소나무 심은 걸 기념해서 세운 비석이라는 말인데, 이 소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성해응(1769~1839)의 문집인 연경재전집(研經齋全集)에 전한다. 화동의 성삼문 집에 있던 소나무와 목멱산 즉 남산 자락에 살던 박팽년의 집에 있던 소나무를 베어 성해응의 아버지 성대중이 거문고를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매우 맑으면서 곧았다고 기록했다. 두 사람의 절개를 생각하며 지었다는 거문고의 이름이 쌍절금(雙節琴)이다. 하지만 쌍절금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송강 정철은 뛰어난 가사 작품을 남기긴 했지만 관직에 있는 동안 수많은 정적을 죽인 인물이자, 요즘 말로 하면 어용 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송강금보다는 쌍절금이 국어사전에 올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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