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20회)
키 대 보기 (20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4.30 00:00
  • 호수 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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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요?”
“그려. 어서 다 벗어. 물 식기 전에.”
“에이, 할머니는 그럼 방에 들어가계세요. 형이랑 둘이 할게요.”
“안돼야. 그럼 장난만 치다 다 끝날 거여. 내가 알어. 네 아빠 어릴 적에 작은아버지들 하고 목욕 시킬려면 맨날 그랬거든.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어놓고 몸에 때는 그대로 있고. 어서 벗어!”
형과 나는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옷을 벗었습니다. 부엌 한 가운데 떡 들어서서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는 갈색 고무 통이 우릴 힐끔힐끔 쳐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먼저 옷을 다 벗고 목욕통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앗! 뜨거! 할머니, 다 식혀놨다고 했잖아요?”
“뜨겁긴 뭐가 뜨거? 시원허지. 어여 팍 앉어. 때 불게.”
이어서 형이 통 안으로 들어오자 통속의 물이 밖으로 넘쳐흘렀습니다.
형과 나는 좁은 통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할머니가 말하는 대로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팔!”
“다리!”
할머니가 부르는 대로 형 팔과 내 다리, 내 팔과 형 다리가 번갈아 통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했습니다. 할머니는 지치지도 않으신지 굽은 허리를 더 굽혀가며 우리 몸을 닦아주셨습니다.
“참말로 옛날 생각난다. “
“옛날요?”
난 옛날 이야기라도 들려주시련가 보다 생각하며 얼른 대꾸했습니다.
“잉, 옛날. 니들 아빠하고 작은아버지, 고모들이 어렸을 적 말이다.”
“그게 뭐 옛날이에요?”
“옛날이지. 할미 머릿속에는 바로 엊그제 같지만 거울 속에 들어있는 쭈글쭈글한 할망구 얼굴은 그게 다 옛날이라고 말해주거든.”
왠지 할머니 목소리가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애들 어렸을 적에는 참 힘들었다. 논일하랴, 밭일하랴, 애들 키우랴. 한시도 허릴 펴고 앉아 있어본 적이 없었어. 그때 할미 소원이 뭐였는지 아냐?”
“뭐였는데요?”
“실컷 낮잠 한번 자보는 거. 그게 그렇게 큰 소원이었는디. 인자는 낮잠을 안 자도 좋으니께 애들이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구먼.”
“그럼, 할머니 우리 서울 갈 때 같이 가요.” 달아올라 벌겋게 변한 얼굴을 내밀며 형이 말했습니다.
“뭐어? 여긴 어떡허고? 개밥은 누가 주고, 밭은 누가 갈어? “
“그렇지만…”
“할미가 보고 싶은 것은 옛날이여. 다들 어리고 어려서, 이 할미가 돌봐줘야 했을 때, 그리고 형제간들끼리 서로 부대끼고 놀고 싸우고 그럴 때가 보고 싶다는 거여.”
“할머니, 아빠하고 작은 아빠들도 싸웠어요?”
“참나, 안 싸우고 크는 형제 있간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쌈질을 했는디, 그게 다 딱지나 먹을거 때문였다니께.”

<P><계속>

<P><함께읽는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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