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공부만으로 인생을 바꾼 인물들이 인류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처음부터 별이었던 것은 아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잊어가면서 공부한 결과이다.
논어 술이편7-18문장은 이렇게 웅변한다. 하루는 섭땅의 군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님은 어떤 인물입니까?”하고 물었는데<섭공문공자어자로葉公問孔子於子路> 자로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였다.<자로부대子路不對> 나중에 공자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는 크게 서운해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말하지 못하였느냐<여해부왈女奚不曰> 그의 사람됨됨이는<기위인야其爲人也> 공부를 했다 하면 밥 먹는 것도 잊으며<발분망식發憤忘食> 공부가 너무 즐거워 근심도 잊으며<락이망우樂以忘憂> 장차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부지노지장지不知老之將至> 라고 말이다.<이운云爾>”
조선 시대에도 이런 공자님의 공부법을 본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소년이 있었다. 그는 출신성분이 서자인지라 벼슬에 나가기도 쉽지 않은 처지였지만 환경과 처지에 굴하지 않고 공부를 많이 한 인물이다.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을 가진 이덕무라는 사람인데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 내용 한 토막을 옮겨쓰면 이렇다.
“목멱산 아래 한 바보는 살고 있다.<목멱산하유치인木覓山下有癡人> 입은 어눌해 말을 잘하지 못했으며<구눌불선언口訥不善言>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했으며<성나졸性懶拙> 일할 때를 알지 못했으며<불식시무不識時務> 바둑도 장기도 더욱 둘 줄 몰랐다.<혁기우불지야奕棋尤不知也> 남들이 욕해도 변명하지 않았으며<인욕지불변人辱之不辨> 칭찬해도 우쭐하지 않았으며<예지불긍譽之不矜> 오직 책 보는 것으로 낙을 삼으니<유간서위락惟看書爲樂> 날씨가 추운지 더운지 배가 고픈지 몸이 아픈지 몸이 죽어가는지<한서기병수寒暑飢病殊> 알지 못했다.<부지不知> 어려서부터<자도아지년自塗鴉之年> 스물 한 살에 이르도록<지이십일세至二十一歲> 일찍이 손에서 하루라도 옛 책을 놓은 적이 없었노라.<수미상일일석고서手未嘗一日釋古書>”
사실 공부라는 것은 어려서 해야 하는 거다. 그것을 증명해 낸 인물 중 하나가 간서치 이덕무 인거고, 그가 무턱대고 책만 읽어댄 것은 아닐 터, 그에게는 분명한 본받을 기준을 세워놓고 공부에 매진했던 것이다. 곧 율곡이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는 성인 공자님을 기준으로 세워서 공자님께서 하셨던 공부법대로 하라고 주문한다. 사실 공자님은 인류에 공부의 그 첫 문을 여신 분이시다. 논어 헌문편14-41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님의 제자 자로가 석문에서 잠을 자고 나오니<자로숙어석문子路宿於石門> 새벽에 석문지기가 이렇게 물었다.<신문왈晨門曰>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해자奚自> 그러자 자로가 대답한다.<자로왈子路曰> 공자님 계신 데서 왔소이다.<자공씨自孔氏> 그러자 석문지기는 말한다.<왈曰> 아하<시是> 안 되는 줄 알면서도<지기불가知其不可>그렇게 하는 사람 말이오.<이위지자여而爲之者與>” 바로 이점이 후학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곧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 말이오’ 라는 대목이다. 공부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공부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설령 그러하다 해도 공부는 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준비한다는 말이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와도 잡을 수가 없다. 준비라는 말을 후한 말기학자 정현鄭玄은 예습豫習이라 했다. 앞으로 배울 것을 미리 학습해 둔다는 것으로,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 따르면 정현은 마융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정현재마융문하鄭玄在馬融門下> 정현은 집안의 노비에게도 글을 읽고 쓰게 했다<정현가노비개독서鄭玄家奴婢皆讀書>한다. 노비나 하인에게도 글을 가르친 까닭은 언젠지는 모르나 공부해두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삼국지 초입에 등장하는 인물 하진 대장군을 예로 들었다. 대장군의 지위까지 오르는 기회를 잡았으나 공부를 안 한 탓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불세출의 인물이 나오는데 논어주소論語注疏에 주注를 낸 하안何晏이 그다. 어려서의 공부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