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21회)
키 대 보기 (21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5.07 00:00
  • 호수 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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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우리 서울 가면 아빠한테 다 말해주자. 아빠도 어렸을 적엔 싸웠다면서요? 그렇게.”
“그래. 히히. 생각만 해도 웃긴다. 작은아빠들 하고 딱지치기하다 막 싸우고 울고, 할머니한테 혼나고, 히히히”
“그렸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녀. 형제간끼리는 싸움도 하지만 또 얼매나 정이 많은지 몰라.”
“쏴아”
할머니는 내 등을 다 밀고 나서 물을 한번 부어주십니다. 다음은 형이 등을 밀 차례입니다.
형은 익을대로 익어서 붉어진 등을 내밀며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싸우면 막 혼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그러셨어요? 안 그러셨죠?”
“아, 왜 안 그려? 할미도 에민데. 애들 버르장머리 고치자면 화도 내고 매질도 하고 그려야지. 허지만 할미도 니 아빠가 열 살 먹었을 때던가, 그때부턴 매질을 거의 안했당게. 큰 소리로 혼내지도 못혔어.”
“왜요? 전 열 두 살이어도 엄마한테 가끔 맞는데…….”
형이 볼멘 소리를 냅니다.
“끙, 왜 이렇게 때가 많어? 할미 기쁘게 해줄려고 때 많이 만들어놨구만.”
할머니는 가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럴 때입니다.
“아이, 할머니 왜 아빠는 열 살 때부터 안 맞았는데요?”
“으응, 아, 글쎄 그때만 생각하믄 가심이 막 쌓여서 죽겄다. 할미의 엄마, 그러니께 니들의 증조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니들 아빠 열 살 때,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뱀에 물렸다는디 내가 기별 받았을 때는 벌써 저 세상으로 가신 뒤였지. 그때 니들 할아버지는 뭔 일로다 어딜 가셨는디, 어린 것들을 죄다 데리고 갈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막내만 하나 들쳐업고 신발을 신었지. 눈에서 자꾸 눈물이 쏟아져서 신발도 잘 안뵈더라구.”
“막내면, 고모요?”
“그려, 우리 철수 고모지. 고모만 업고 길을 나서면서 동네 느티나무 앞에서 놀고 있던 니들 아빠를 불렀어. 그리고 단단히 일렀지. 동생들 잘 데리고 있으라고. 밥은 옆 집 창수네서 줄테니까 걱정말라면서. 매일 쌈박질하던 녀석들이라 놔두고 가기가 영 꺼림칙혔지만 어쩔수가 없었던겨.”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죠? 할머니.”
“아유, 우리 철수 머리도 좋다. 박사님 되겄다.”
“할머니! 철수가 수학을 몇 점 맞는지 아세요?”
“형!” 내 강렬한 눈빛 총을 받은 형이 물 속으로 첨벙 넘어집니다.
“알았다. 알았어. 할머니 이야기 계속 해주세요. 꼭 옛날 이야기 같아요.”
“옛날 이야기 맞지. 어디까지 혔드라? 잉, 알았다. 그려서 할미하고 진숙이 고모하고만 증조할머니 돌아가신 초상집에 갔는데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당한 상이라 더 그렸지. 출상
하던 날 새벽, 아직 어둑어둑 했을 때 누가 급히 문을 두드리더라고. 창수 아버지였어. 물어 물어 밤길을 달려왔다는겨. 순간 가슴이 철렁 하드만. 뭔 일이 생긴거구나, 하면서.”
“무슨 일이었어요?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는겨.”
“네? 불이요?”
형과 나는 그만 고무 통속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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