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은 공부를 많이 하신 것에 대하여 무척이나 대견해 하셨다. 그 엄청난 가난과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적인 생활 속에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공부를 하셨던 분이 공자님이시다. 나이가 70세가 넘으셔서도 공부를 하셨으니 요즘의 시각으로 봐도 대단하신 것은 맞다.
아성 맹자님은 이런 공자님을 일러 맹자 고자 장구 하편에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으시다. “하늘이 장차 큰일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는<천장강대임어시인야天將降大任於是人也>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의 뜻을 괴롭히고<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노기근골勞其筋骨>, 그 체부를 굶주리게 하고<아기체부餓其體膚>,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하며<공핍기신空乏其身> 행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하나니<행불란기소위行拂亂其所爲>. 이는 마음을 움직여 성품을 인내하게 함이요<소이동심인성所以動心忍性>, 일찌기 할 수 없었던 일을 더욱 하도록 하기 위함이니라<증익기소불능曾益其所不能>.”
공자님의 공부법은 공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상에까지 이르신 공부법이다. 논어 헌문14-37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막아지야부莫我知也夫> 자공이 말하길<자공왈子貢曰> 어찌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십니까?<하위기막지자야何爲其莫知子也>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불원천不怨天> 남을 탓하지 않으며<불우인不尤人> 아래로부터 배워서 위로 도달했으니<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이구나.<지아자기천호知我者其天乎>”
공자님은 평생 공부한 것을 남들이 비록 알아주지 아니한다 해도 하늘은 알아줄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여가며 공부하셨다. 이러한 사상은 공자님의 평소 공부관이셨다. 이러한 공부관은 논어 학이편에서 군자의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치 않나니<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또한 군자 아니랴.<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여기서 서운하다고 해석한 온慍은 근심이나 걱정한다는 말로도 읽히기도 하는데 논어 이인편4-14문장에서 공부 부족함의 근심과 걱정을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한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않나니,<불환무위不患無位> 지위를 맡을 실력이 없음을 근심하며,<환소이립患所以立>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할게 아니라<불환막기지不患莫己知> 남들이 알도록 내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위가지야求爲可知也>”
나의 실력을 키워 나를 세우는 데는 공부만한 것이 없다. 논어 위령공편15-18장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군자는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병으로 여겨야지<군자병무능언君子病無能焉>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겨서는 아니되니라.<불병인지불기지야不病人之不己知也>”
사실 공부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공부의 대상이다. 그래서 왕양명은 전습록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디가도 도 아닌 것이 없으며<무왕이비도無王而非道>, 어디가도 공부 아닌 것이 없나니<,무왕이비공부無王而非工夫> 그럼에도 성리학을 종주로 삼는 사대부가의 선비라면 공부의 방향을 몸과 마음을 바루는 수신과 제가에서 시작됨이 마땅할 터.”
율곡 이이께서는 그 기준으로 공자님의 공부법을 본받으라 말씀하셨다. 공자님의 공부법을 본받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논어를 읽는 일이다. 사실 논어라는 책은 경經은 아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경은 육경으로 시경 서경 예경 악경 춘추경이 그것이다. 이는 공자님 시대에도 있었던 고서로 특히 시경 서경 역경은 공자님 시대에도 해석이 어려워 학자들조차도 쉽게 읽혀지지 않았던 책이다.
이런 책을 일반인이 읽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 거니와 특히 자녀가 읽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논어는 다르다. 경經이 아닌 서書로 분류되기에 공자님의 공부하심과 제자들의 배움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문언문체文言文體가 아닌 백화문체白話文體로 된 한담의 자서子書, 곧 공자님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했음이다. 근자에 이르러는 논어 책의 많은 해석본이 있어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