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얼핏 들려오는 소문들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도 현직인 조 바이든과 지난 선거에서 밀려났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조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이미 80대의 노인이며, 트럼프는 77세로 만일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재임 중 80세를 넘기게 된다. 나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는 대선에 패해한 뒤 승복할 수 없다며 지지자들을 부추겨 의회를 습격하도록 조장한 장본인이다. 그는 전자오락 게임을 즐기듯 함부로 정치를 했다. 조 바이든에게는 트럼프가 어지러워진 정치질서를 복원할 책임이 있었지만, 지난 4년 동안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의 기력과 건강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하는 게 많은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어째서 미국의 3억 인구 가운데 조 바이든이나 트럼프를 능가할 대통령감이 보이질 않는 것일까. 딱히 새로운 카드 없이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을 바라봐야만 한다면, 미국이나 미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국제사회는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유례없이 혼란에 빠진 지금의 국제정세가 이대로 지속되거나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천 년대로 들어와 20여년이 금방 지나갔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21세기라고 말한다. 지난 20년은 20세기의 질서가 21세기의 새 질서로 변환되는 적응기였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고비는 COVID-19 팬데믹 위기였다. 진정한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큰일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면 그 고비 넘어온 인류 앞에 펼쳐지고 있는 21세기는 어떠한가. 바이러스 팬데믹의 꼬리를 물고 시작된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인 간 중동전쟁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끝이 무언가. 비관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그것이 21세기 질서의 새로운 시작점일 수도 있다. 바이든이나 트럼프 뿐 아니라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등등이 모두 20세기 질서에 찌든 구세대들이다. 중동에서 전쟁을 주도하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또한 언제적 사람인가. 아무래도 국제정세는 무언가 땅이 뒤집히는 수준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런 재편을 ‘지각변동’이라 하는데, 마침 지구자연은 ‘지각변동’의 조짐을 보이며 들끓고 있다. 정치 사회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 지구의 지각판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짐은 벌써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작년 가을 이후 태평양 주변의 지각판은 매우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얼마나 강력한지 오늘내일 지각변동이 현실이 된다 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지진과 해일을 통해 그 것을 실감할 수 있는데, 호주와 동남아시아 사이, 일본열도와 알래스카, 그리고 남북아메리카의 서해안에 해당하는 멕시코만, 카리브해, 칠레 해안 등은 하루도 쉴새 없이 지진이 반복되는 중이다. 사람이 몸으로 지각하거나 건물이 흔들리는 수준의(진도 4.5이상) 지진이 하루에도 30~50건씩 이어지는데, 가끔 최고 수준인 7.0 이상의 지진으로 산이 무너지거나 건물이 쓰러지거나 해일이 해안을 휩쓸었다는 뉴스는 이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본격적인 21세기의 전반은 이처럼 땅도 격동하고 인간들도 격동한다. 옛 역사에 보면 지진 가뭄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인간사회의 정치적 현상과도 맞물린다는 관점이 있었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계속되면 국가의 지도자들은 반성하는 의미로 재를 뒤집어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고를 열어 백성들을 위무하는 정책을 폈다. 하늘이 감동해야 정치도 기상도 편안해진다는 믿음이었다. 인간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친 듯한’ 기상이변과 특히 이러한 때에 나타나는 ‘제정신 아닌’ 정치들은(국내외를 막론하고) 천지의 기운변화와 연관하여 무관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부디 선량한 인구의 희생이 최소화되면서 정치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이 최선으로 지켜지는, 바람직한 지각변동이 결과로 맺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