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분이 있는 프랑스인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들은 한 달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주일 정도는 우리 부부와 일본 여행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가고 싶은 곳을, 나중에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함께 다녔다. 첫 여행지는 히로시마현 미야지마였다. 비는 왔지만, 운무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해안에 서 있는 빨간 도리이가 인상적이었다. 좁은 언덕길의 주택들과 해안의 상점들도 정갈했다. 섬 전체를 트레킹하였는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단풍나무 계곡의 맑은 물과 잘 가꾼 숲 속 정원은 감탄을 넘어 부러움이 생겼다. 어딜 가나 사슴이 있었다. 이 섬의 주인은 나라는 듯이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사슴이 신기했다. 미야지마의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환경에 프랑스 부부는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 번째 여행지는 오카야마현의 구라시키 미관지구인 전통마을거리였다. 맑고 깨끗한 작은 개천 주변에는 버드나무들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벚나무는 개천을 향하여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 나무들 가운데 오래된 구슬나무 몇 그루는 장중하면서도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개천에는 백조와 해오라기가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스위스 레만 호수의 백조처럼 이곳의 백조도 스스로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좁고 긴 천에는 관광객들을 태운 작은 배들이 생기를 더해주었다. 개천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깨끗한 마을 거리는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전통적인 마을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광에 예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또한 상점에 진열된 지역 특산품과 관광상품은 케이스조차 아름다웠다. 같은 거리를 몇 번이나 돌아다녀도 지겹지가 않았다.
세 번째 여행지는 교토였다. 교토 시내뿐만 아니라 교토 근교에 볼거리가 많다고 하여 교토에서 좀더 오래 머물렀다. 일본의 옛 수도이자 대도시인 교토 뿐만 아니라 인근 여행지도 어딜가나 인파에 떠밀렸다. 비수기인데도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은데 성수기에는 어떨까 싶었다. 교토 시내를 흐르는 카모강변과 카모강 지천은 물이 맑고 아름다워서 매일 밤낮으로 산책을 하였다. 깨끗한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먹이 활동을 하거나 유유자적하는 새들이 많았다. 해오라기, 쇠백로, 청둥오리, 까마귀, 까치, 이름 모를 물새까지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청결함이었다. 에도 시대부터 집 앞과 거리를 깨끗이 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디를 가나 휴지 하나 없어 놀라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도시, 지방 소도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우리나라는 왜 그렇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고 바빠서일까,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에 대해 무심해서일까,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서일까, 쓰레기를 버릴 장소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었다.
일본 여행을 함께 했던 프랑스인 부부는 4년 전에 한 달간 한국 여행을 왔었다. 한국 음식을 좋아했던 그 부부는 서천 우리집에서 여러 날 머물면서 김치와 김밥 등 한식을 배우고 갔다. 그러고나서 우리 부부도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한 달 동안 남부 프랑스와 인근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때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이 지내던 새들과 작은 야생 동물들, 잘 가꾸어진 오래된 나무들이 있는 공원의 숲에서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 깨끗이 유지되던 문화적 생태적 환경들과 유산들은 내게 아주 인상적이었으며, 그러한 것들이 바로 관광의 주요 자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프랑스인 부부가 서천에 왔을 때, 그들을 장항 송림에는 데리고 갔지만, 봉선지는 데려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세계적인 풍광이라고, 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랑했던 봉선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봉선지 주변과 수변에 늘 쌓여있던 쓰레기들 때문이었다. 요즘도 봉선지를 산책하면서, 도로 가나 해변의 버려진 쓰레기들과 정비되지 못한 하수구,지저분한 농가 주변을 보면서, 아름다운 서천, 깨끗한 서천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서천군 환경 지킴이라는 고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꾸준히 환경 정화 활동을 지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