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보고 ■ ‘시 낭송의 밤’과 농민의 죽음
■ 현장보고 ■ ‘시 낭송의 밤’과 농민의 죽음
  • 김봉수 기자
  • 승인 2005.12.02 00:00
  • 호수 2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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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장면으로 본 2005년 가을 국회

장면 1.

11월 23일 오후 국회. 쌀 관세화 유예 협상 비준 동의안 처리를 저지하려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원내 지도부를 비롯한 3~40대 젊은 여당 의원들과의 몸싸움 끝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결국 동의안은 찬성 139표, 반대 61표, 기권 23표로 통과됐다.


그 와중에 단연 돋보였던(?) 것은 소위 386 출신 의원들의 ‘육탄 방어’였다. 특히 386세대 여당 지도부 의원들은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서천 보령 출신 류근찬 의원은 ‘처리 연기’라고 쓰여진 종이를 든 민주당 의원들 옆에 서서 상황 내내 국회 연단 앞에서 침묵시위를 했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은 각 언론들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장면 2.

11월 24일 오후 국회 도서관 강당. 어제 그렇게 서로 몸싸움과 고성을 지르던 국회의원들이 오늘은 화기애애하게 ‘시 낭송의 밤’을 열었다. 국회 사무처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악, 사물놀이, 한국무용 등의 흥겨운 시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의 정취와 시 낭송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자리였단다.


한편 그 옆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선 중앙선관위 주최로 ‘바른 정치 후원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한 노래’ 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나와 ‘광야에서’, ‘조국찬가’ 등을 불러 제꼈단다.


이에 대해 한 지방일간지 기자는 ‘두 얼굴의 정치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바리게이트와 무장한 전경, 국회 곳곳을 돌아다니며 출입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과 ‘떨어지는 낙엽 아래 시 한편 읊는 의원, 대중가요를 신나게 부르며 흥을 돋우는 의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장면 3.

11월 24일 밤. 쌀 관련 비준 동의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인 이 시간. 충남 보령의 한 곳에선 지난 15일 농민대회에서 머리를 다친 후 이날 새벽에 사망한 농민 전용철 씨의 시신을 실은 차가 차가운 도로 위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부검을 하자는 경찰과 “경찰은 믿을 수 없다”는 농민회 측의 주장이 맞섰지만 결국 부검은 강행됐고, 경찰이 “정지된 물체에 의한 두개골 골절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즉 전씨의 죽음은 경찰의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넘어지면서 다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전씨가 경찰에 의해 폭행 당했다는 주장과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허준영 경찰청장은 28일 “시위 현장에서 불상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합동조사반 구성을 농민단체에 제안했다.


장면 4.

11월 29일 국회. 지난 주까지 전용철 씨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던 여야 정당들은 전 씨의 죽음이 경찰에 의한 타살 쪽으로 기울자 이날 부랴부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전씨의 죽음을 놓고 싸워 온 민주노동당의 박용진 대변인은 이렇게 논평했다.


“인터넷 생활 글에도 댓글을 달아 놓을 만큼 말이 많은 대통령이 국가 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한 농민의 죽음에 대해 6일 동안이나 침묵하고 있는 것은 진실은폐에 대한 동조행위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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