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양민학살 피해자를 찾습니다"
“판교양민학살 피해자를 찾습니다"
  • 이후근 기자
  • 승인 2005.12.16 00:00
  • 호수 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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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양민학살 유가족 대책위원장 이충열 씨
“55년 전 억울한 죽음, 진상규명 이뤄져야"

   
▲ <사진/이후근 기자>
이번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판교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까.


본지는 지난 1999년 창간부터 6.25전쟁 시기 미 공군의 기총사격에 의해 민간인이 대량학살 당한 판교양민학살 사건을 심층 보도해왔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직접적으로는 피해자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미군 판교 양민학살 유가족 대책위원회(위원장이충열)’는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안 가본 곳은 거의 없었다. 군청은 물론 청와대, 각 정당 등 호소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며 원통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그 어느 곳 하나 시원한 답을 내려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사건 당시의 처참함을 직접 목격했거나 상세히 기억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직계가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져갔다.
또 진상규명활동을 펼치면서 그나마 연락이 닿았던 유족들과의 연락마저 끊어졌다.더욱 안타까웠던 일은 사건 당시 마지막 생존자였던 고 지태모(판교면 만덕리)씨의 죽음이었다.

고 지태모 씨는 사건 당시 왼쪽 팔을 잃어버리고 평생을 불구자로 살아오다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진상규명을 미처 못보고 지난 2003년 운명을 달리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이 영영 묻혀버려질 것만 같았던 판교양민학살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되고 있다.


이달부터 일제강점기 이후 거의 100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각종 ‘과거사건들을 규명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시행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법 시행과 함께 업무를 담당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위원장 송기인)도 공식 업무를 시작하면서 진상조사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의 좌절 이래 끊임없이 제기돼 온 ‘과거청산과제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총정리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조사 대상에 6.25전쟁 시기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도 당연히 포함됐다. 유가족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충열(65·서천 군사리)씨 또한 법 시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어머니 조애연 씨를 그 사건으로 잃어야 했다. 이 위원장의 어머니는 아무리 전쟁 통이라도 가족의 생활을 위해 장을 보러 나서야 했던 4남매를 둔 평범한 시골 촌부였을 뿐이었다. 그 어머니가 미군 비행기의 기총 세례를 받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옆구리에서 창자가 허옇게 터진 채로 가족들에게 돌아왔던 것을 이 위원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례마저 미군 비행기의 기총사격이 무서워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상여도 없이 들것에 실려 나가야만 했던 서글픈 장례식이었다
미군들은 그 때 흰옷 입은 한국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무조건 사격을 가하곤 했다고 한다.그 뒤 이 위원장 4남매의 삶은 어머니를 잃은 설움과 함께 고단하기만 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어머니 죽음은 이 위원장 가슴에 고스란히 한으로 남았다. 더 원통했던 것은 그 원통함을 달리 호소할 길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그 원통한 죽음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런 분위기는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진상규명 활동을 시작했던 2000년 까지도 여전했다.

심지어 진상조사를 위해 찾았던 마을주민들로부터 ‘간첩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분단과 친미적인 억압통치가 만들어낸 실로 완벽한 침묵의 강요였다그러나 이 위원장과 유족들은 그 침묵을 깨고 진상규명은 물론 명예회복을 당당히 이 사회에 요구해 나아갔다

비록 최근에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활동이 잠시 소강상태였지만 그 의지만은 확고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당시의 처참했던 기억들이 세월과 함께 희미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위원장과 유족들이 과거사 정리법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이 위원장은 과거사 정리법 시행을 계기로 그동안 흩어졌던 유족들을 다시 연결하려 애쓰고 있다. 판교양민학살사건이 개인가족사를 넘어 지역 아니 민족전체의 문제임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개인차원의 진상조사 신청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유족들을 모아 집단적으로 진상 조사신청을 할 계획이다. 피해자 관련 유족들이 다시 한번 모여 최소한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 미군의 사격이었음을 이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위원장이 유족들에게 보내는 당부였다.


◆ 미군 판교 양민학살 유가족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렬 
                                                        ( 041-953-1570, 019-652-1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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