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장포리
6월, 장포리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06.29 00:00
  • 호수 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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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재/옥천신문 발행인
술이 덜 깬 아침 바다를 보자며 해안가로 나선다.
여기저기 밀려 있는 나무토막이며, 폐그물 조각, 빈병에 너저분한 쓰레기들.
뒤를 이어 나온 동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야! 이거 어젯밤에는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더니 오늘 아침은 뭐야!”
“낭만 다 깨지는데!”

해안가가 온통 쓰레기로 덮여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동료들은 어젯밤에 밤바다에 나왔었다. 그리고 파도가 밀어닥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장난도 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단다.
밤바다는 우리에게 항상 낭만을 준다.
내가 갔던 곳, 서천에서도 이름난 갯벌체험지인 장포리 바닷가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여름, 한 번 찾고는 우연히 같은 장소를 가게 되어 기대도 컸다.
가족들과 함께 갔던 장포리 바닷가에서 우리는 자정께 갯벌에 나가 많은 조개를 잡았다. 아니다. 낮에도 많은 조개-대부분 동죽이다-를 잡아 보기는 처음인지라 제대로 갯벌체험을 했었다. 그래서 좋았던 바닷가다.

조개를 잡으려면 헌 양말을 신어야 하고, 호미처럼 생긴 갈고리 모양의 조개 캐는 도구도 바닷가에서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맨발로 갯벌을 밟고 있노라면 발바닥 아래로 은근히 느껴져 오던 느낌이 좋았다. 갯벌 속에 있는 조개에 닿는 느낌이 들어 손으로 움켜쥐면 영락없이 잡히는 조개. 조개 잡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가끔은 꼬막도 잡혔다. 동죽만 잡히던 곳에서 가끔 나오던 꼬막이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장포리의 추억은 물이 들어올 때 끝났지만 자연을 공부한 것으로, 바다를 현장에서 본 것 이상으로 진한 감동을 주었다.
돌아올 땐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서천 사람들에게. 서천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갯벌에서 ‘너무 많은 조개를 잡아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이웃과 나눠먹는 조개는 이웃과 사귀기에도 좋은 재료가 되었다. 조개구이를 아주 맛나게 해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6월2일, 회사 동료들과 함께 또다시 서천을 갔다.
지난해 경험이 있던 나는 딴에는 ‘물때’도 보고 갔다. 그날 간조가 새벽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조개잡이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유식한 척 하느라 동료들에게 물이 완전히 빠지는 시각을 가르쳐주며 ‘물때’를 알려주었는데 말짱 헛일이 되었다. 술이 웬수였다. 너무 많이 마신 탓에 혼자만 밤바다를 가지 못했다. 그렇게 좋은 바닷가에 가서 술만 마시고 오다니 원!
그래서 아침에 바닷가에 나갔다.

뒤따라온 동료들은 어젯밤과 아침을 비교하며 바닷가의 밤과 낮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고 한탄이다.
썰물이 남겨둔 쓰레기에 동료들이 실망한 눈빛이다. 외지에서도 유명한 갯벌 체험지에서 본 쓰레기 더미라니…….

이제 장마철이다.
물론 서천 바닷가의 쓰레기 더미가 서천 사람들만의 잘못이 아니란 건 잘 안다. 더구나 하류인 서천 바닷가로 운반되는 쓰레기는 결국 금강가에 살고 있는 우리 옥천 사람들의 무책임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옥천은 충청권의 젓줄인 대청호 유역면적의 30%를 넘게 떠안고 있다.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살고 있는 옥천 사람들은 장마철이면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대청댐 관리단에서 장마철 수면 쓰레기 치우기를 위해 무진 애를 쓰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다 치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장마철 금강 수면에 덮이는 부유 쓰레기는 해마다 사진기사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곤 한다.
예년에 비해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올해만큼은 달라졌으면 좋겠다.

서천 바닷가에서 보았던 해안 쓰레기는 결국 금강에 살고 있는 우리와, 낚시꾼들이 강가에 버려 쌓인 쓰레기와 다르지 않았다. 한 번 더 반성하고 금강가에 앉아 있는 낚시꾼들에게 한 번 더 귀찮게 하리라는 생각이다.
 한 번의 조개잡이로 바다는 ‘갯벌은 바다 사람들의 삶의 터’ 라는 배움을 내게 주었다. 이 소중한 갯벌이 쓰레기로 뒤덮인다면 정말 안 될 일이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갯벌이 하얗게 소금기로 덮이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 갯벌 위로 기어 나와 죽어가는 조개와 바다 생물체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갔던 갯벌, 서천 장포리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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