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한반도는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의 기운을 만지작거리게 해주고 있다. 지난 여름은 전례 없이 기나긴 장마를 기억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코로나 19와 함께 가장 우울한 계절이었다.
그럴 참에 가을이 다가서면서 피부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고, 활력의 기운을 뼛속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 이제는 움직여야지. 밭에 무성하게 자란 잡풀도 뽑아내고, 내 몸 안에 가득한 우울증도 깔끔하게 걷어내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생(生)에 대한 희망의 모닥불을 지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여름 내내 멍하니 정지되었던 두뇌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자연스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연상되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청소년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던 필자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지금처럼 절절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인간 세계에서 돌파구가 없는 코로나19와 기상 재난에 대해 초자연적인 신에게의 의지,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을 갈구하고자 하는 구원, 그러기에 끝모를 터널 속처럼 음습했던 지난 여름조차 ‘위대’했다고 겸허히 떠받드는 마음을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긴 장마와 9호, 10호 태풍은 마지막 남은 열매들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지난 여름 초기에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던 감들은 시나브로 낙하를 하면서 지금은 잎새들만 남아서 나풀거리고 있다. 수많은 농부들이 유난히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보면서 텅 빈 가을날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준다면 올 가을이 아닌 내년 가을이라도 탐스럽게 무르익은 희망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누군가가 ‘절망은 희망의 씨앗’이라고 했다는 말이 아슴아슴 기억난다. 아마 요즘처럼 고난의 시기를 잘 극복해낸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큰 선물을 가슴에 품을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필자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싶다. 올해 감이 다 떨어졌다고 감나무를 베어내기보다는 내년에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도록 물길을 내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일같이 집안에서 우울한 마음을 침대 삼아서 살기 보다는 독서나 취미활동을 통하여 자기 연찬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가꿀 것이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달라는 시인의 간곡한 기도처럼 가슴 아픈 상처는 과거로 던져 버리자. 때때로 견뎌내기 힘들었던 현실들이 과거가 되면 아릿한 추억으로 채색되어 우리들의 인생을 더 아름답게 꾸며주기도 하니까. 부침 없는 삶보다 다사다난했던 삶을 산 사람들이 이야깃거리를 더 많이 펼쳐낼 수 있으니까. 가까운 미래에 다소 어려운 일에 봉착하여도 ‘그래, 그 때도 꿋꿋이 버티고 살았는걸.’ 하면서 바닥을 다지는 기회로 삼자.
이 가을에는 너나없이 어려운 상황들을 감안하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하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키워보자. ‘그래도 네가 곁에 있어서’ 살만한 세상이란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보자. 이 가을에는 서로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