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전진기지로 발돋움하는 마량 포구
서천 전진기지로 발돋움하는 마량 포구
  • 최현옥
  • 승인 2004.04.09 00:00
  • 호수 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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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의 중심지로 선진문화 전달의 창구였던 서천지역 곳곳의 포구들은 대동여지도를 기준으로 죽산진, 후포, 와포, 마량진 등 11곳이 된다.
이에 본지는 지역별로 포구 기행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그곳에 얽힌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는 서면지역 편으로 마지막이다.
<편집자 주>




해돋이·해짐이로 유명한 마량포,
과거 군사요충지,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지역축제 활성화, 관광지 급부상!


하늘로 닿아 있는 바다

어떤 길은 바다로 뚫려있고, 어떤 길은 하늘에 그대로 닿아있다. 어떤 길은 초록의 터널이며, 어떤 길은 안개의 터널이다. 해돋이로 유명한 마량포구를 향해 어둠이 거치지 않은 길을 달린다. 어둠을 뚫고 하늘에 닿아있는 바다 길을 향하고 있다. 어스름한 길가에서 종종 폐선과 폐가, 녹이 슨 닻이 눈에 뜨인다.
서천을 출발한지 30여분, 비인을 지나 마량포구를 향해 고개를 넘자 초승달 모양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운 님의 눈썹을 꼭 닮은 지형은 하나의 화폭으로 마량포구가 아름다운 어촌으로 선정된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로등이 하나, 둘 나가고 여명에 물들어 파르스름한 빛이 대지를 적신다. 밤새 검은 구름에 잠겨 있던 바다. 바다를 쓸고 가는 바람의 흔적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숨을 고른 바다를 가르고 고깃배들이 하나, 둘 출항하는 마량포구.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답사자의 마음은 너무나 고요하다.
마량포구가 해돋이 마을로 유명해진 것은 99년 개최된 밀레니엄 행사이후다. 서해안 지역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희귀한 것으로 서천군은 매년 해돋이 축제를 개최,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칠구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마량포구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선의의 거짓말처럼 착시현상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푸른 새벽 바다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수평선이 붉은 빛깔로 물들어 가고 사위는 노란빛으로 젖어든다. 바다 끝에서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태양은 밤의 흔적인 어둠을 조금씩 조금씩 내쫓으며 지난밤의 온갖 두려움 속에서 새날의 아침을 낳으려고 진통의 아픔을 견디어 내고 있다. 태양은 짧은 시간 땅과 바다를 광휘로 가득 채우며 눈부신 자태를 완전히 떠올렸다. 태양이 떠오를 때 답사자는 자연의 부분이 되고 소우주가 된다.

마량포구는 군사요충지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동이 트기까지 바다는 수백 번도 넘게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설렘과 기다림이 일출의 한 순간에 채워지고 처연한 파도소리는 영혼을 씻어주고 있다. 부두에 즐비하게 수십 척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현재 마량포구는 비인항만 공사가 한창이다. 70년 연안항으로 지정됐으며 2000년 정비계획 및 실시설계용역을 마치고 연근해 어장의 어업전진 기지항으로 개발 중이다. 계획에 의하면 올해까지 공사가 완료되기로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분분해 많은 난관을 겪고 있다. 사업량은 40%가 진행된 상태로 시설이 완료되면 동방파제와 서방파제가 배의 접안을 용이하도록 도우며 물량장, 어판장, 직판장 등 다양한 항만시설을 갖추게 된다. 또 항접안 능력은 화물선박 300톤급 1척이 정박할 수 있게 된다.
수십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는 마량포구, 이곳은 과거 군사요충지인 마량진이었다. 그러나 99년 밀레니엄 행사를 기점으로 군은 포구가 바닷가라는 개념을 갖고 있어 명칭을 바꾸었다. 대동지지에 의하면 마량진이 군사기지가 된 것은 효종 6년, 남포진이 토사에 밀려 배를 보관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마량은 조수가 차면 배가 뜨고 물러가면 뭍에 있어 위급할 때 사용하기가 불편하나 적선 또한 반드시 조수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므로 적절한 대응이 용이했다. 또 마량포구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물이 넓어서 배를 감추어 둘 만했다. 마량진에는 수군 첨절제사가 지휘하고 군관 15인, 하천 25인, 통인 25인, 군뇌 2인, 사령 10인이 있었다. 시설로는 객사, 아사, 내아, 진무청, 창고, 군관청, 유물고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당시 기와 조각과 자기편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물론 마량진은 장항의 장암진도 지휘·감독했다.
그러나 마량진이 해체된 것은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후이다. 이때 전국의 산성과 읍성, 진이 무장해제 됐으며 마량진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감고 서해안을 호령했을 수군들을 그리면 가슴 한곳이 든든하다.

포구는 선진문물 전진기지

“서면 마량리가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임을 선포합니다”
지난해 군민회관에서는 기립박수와 함께 포구가 만남과 이별의 상징이며 선진문물의 전진기지 였음이 확인됐다. 조선왕조 순조실록과 1818년 작성된 영국측 기록인‘한국 서해안 및 류큐열도의 항해기’에 의하면 1816년 9월 비인만 마량진에 정박했을 당시 영국군 함장 바실 홀이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전달해 한국에서 처음 성경이 전래되었고 순조실록과 영국측 기록 또한 일치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마량진 한국최초성경유입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고증 세미나에서 학자들의 고증 및 논찬을 통해 서천 마량진이 전래지임이 밝혀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박용규 교수는“그동안 성경 첫 전래지가 백령도라는 주장과 함께 마량진 설이 팽팽한 대립을 이뤄 자료 검증 결과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이 전달되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넸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며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마량진이 최초 전래지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1816년 성경이 전래된 마량진은 백령도 보다 앞서며 지금까지 밝혀진 사료에 의거할 때 맥스웰과 바실 홀의 서해안 탐사 중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건넨 것이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 사건이다”고 못 박았다. 앞으로 이곳에 성경전래지 관련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이 요구되고 있으며 앞으로 지역주민과 행정기관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

오후를 넘어서자 포구는 활기를 찾아간다. 출항했던 어선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김을 따온 어부들이 선착장에서 바다냄새를 풍기며 땀을 훔치고 있다. 가족단위 나들이 객을 비롯해 연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포구를 빠져나와 동백나무 숲으로 향했다. 면적 23.145㎡에 85주의 아름드리 동백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량리 수군첨사가 험난한 파도를 안전하게 다니려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계시를 받고 제단을 만들 당시 그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기후변화와 오랜 수령으로 동백꽃이 갈수록 과거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지만 세상을 미련 없이 등지는 모습은 몇 천년이 흘러도 영원할 것이다. 마량포에서 해돋이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해지는 모습이다. 연분홍으로 물들어 가는 바다를 보며 그 무엇도 한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한다. 때를 기다리는 바다의 아름다움은 더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며 지역 발전을 위해 조금씩 준비해야 할 때임을 인지한다.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던 동백꽃 한송이가 그디어 바다 위로 연분홍빛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는 태양이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마량리가 지역 발전의 전진기지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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